정형적 세계에서의 비정형적 삶
오늘은 일찍 잠에 들어야 하지만, 글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물론 읽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우리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래 사회는 보다 정형적이 될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성과 개인화의 물결이 있었지만 통제와 무분별한 추종은 오히려 사회가 개방되면서 그 어두움을 드리운다.
세상은 논리적이며 강하고 교묘한 기법을 활용하여 소수의 사람이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음모론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위치와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은 세계의 역사에 너무나 잘 남아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그러한 힘을 조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도덕책이나 고전 등에 나오는 진부한 개념들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세상에 수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러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글의 취지와 맞지 않다.
개별적으로 앞으로 시대에 있어 어떠한 사람이 세상을 리드할 것인가? 참 경영학 서적스러운 질문이지만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다른 방향으로..
나는 한 가지 개념을 생각해보려 한다. 작가 주의라는 말이다. 작가 주의적 영화, 작가 주의적 문학 등등 어쩌면 예술계에서 사용될만한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 주의라는 개념은 작가라는 개념을 다른 의미로 치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존재인가? 그는 거짓말쟁이인가? 문학, 예술,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만화, 그림 등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더욱 많은 영향을 미칠 미디어는 무엇인가?
인간은 논리적인 부분과 의미론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부분이 어느쪽으로 특화되었는가에 따라 사람의 성격은 조금 다른 성향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 어렸을 때 배우는 모든 지식과 인터액션은 삶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 방향에서 진화한다. 즉,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성장하고 외부와 커뮤니케이션 하며 삶을 만들어 나간다. 책이 인간의 삶에서 유구한 역사를 함께 해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란 무엇인가? 상상력에 의해 날조된 무언가인가? 아니면 인간의 생물학적인 반응에 따르는 부산물인가? 다시 작가는 거짓말쟁이인가?
‘아니다.’ 이야기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의미에 울림을 부여하여 변조하면 목소리가 된다. 생각은 의미가 존재하기에 존재한다. 인간은 이야기가 있기에 살아간다. dot period.
그렇다면 작가 주의란 무엇인가? 누벨바그 시대에 일어난 주류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예술의 움직임을 정의하는 단어인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어떤 의미들을 투사해서 하나의 삶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작가 주의이다.
그렇다면 문학, 작가, 이야기 등이 어떤 하나의 장르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것은 매우 다른 형태의 매체들로 발전하게 된다.
제품, 서비스, 라이프 스타일, 철학, 가치, 비전 등등…
오그라들대로 오그라 들어서 살아가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수 많은 사람들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영원히 기억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무엇을 통해서 무엇을 향해서 투사하는 가?
그것이 단순한 기계적인 움직임, 화학적인 반응, 생물학, 심리한 적인 반응에 돌아갈 미래 사회에 구분될 하나의 특성.
의미론적인 진짜 당신의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게 의미있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의 진리만을 제외하고,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의미는 부여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결코 정형적이지 않다. 인간은 자유의지는 영원히 비정형적이기 때문이다.